접종 희망자는 당연히 갈수록 줄어들겠지 시사

일단 이 기사부터 다시 링크를 하고


인구의 30%가 접종을 했는데 나머지 70% 인구는 이제 슬슬 백신 접종에 대한 관심이 시들하다 이 소리가 아닌데여?

"현재 이스라엘 정부가 정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는 35세 이상 성인과 16∼18세의 청소년이다."

고등학생을 제외한 35세 이하 인구가 접종 대상에서 빠졌음.

일단 이 통계가 맞는지 확실하진 않은데 여길 보면 이스라엘 평균 연령이 30세임. 참고로 한국은 42세임. 그리고 저 통계에서 0세에서 29세까지 인구를 합하면 430만명 정도가 나오고 이 인구가 이스라엘의 약 절반 정도 됨.

즉 접종 대상이 전 인구의 약 50% 정도이고 이 중에 60%가 이미 접종을 했다는 말인데 접종 스케줄을 미루는 사람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는게 당연한 시점이 맞는데?

아무리 세계가 코로나의 공포에 떤다고 해도 코로나에 대한 개인적 관심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누군가는 당장 백신을 맞지 않으면 무서워서 살 수가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내일 당장 코로나로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음.

코로나 백신 맞는 것보다 다른 사정이 급한 사람들이나 게으른 사람들, 혹은 개인적 신념에 의해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접종 일정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룰 수 밖에 없고 이제 그 사람들을 슬슬 보건소로 멱살 잡고 끌고 와서 접종을 해야 된다. 그냥 이거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요?

1등 로또도 가끔 수령자가 안 나오는 판인데 코로나 백신을 한 나라의 모든 인구가 무조건 적극적으로 접종을 시도할거라는 가정이 어떻게 나오는건가요?

승리의 첩경은 공세의 한계를 인식하는거다 시사

알뜰 美, 처절 蘇, 느슨 獨, 허술 日... 후방지원 차이가 승패 갈랐다




나치 독일의 괴벨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를 전후해서 1943년 2월 국가 총력전을 선언합니다. 전황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일반 경제의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전비 투입을 시작해야 하며 이에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죠. 물론 이 시점에서 괴벨스의 판단은 적절한 것이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의 총력전 체제 전환은 속도가 느렸고 아마도 이는 수 개월 후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나치독일의 급속 붕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코로나 방역 상황을 전쟁으로 간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여러가지로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비유는 복잡한 현상의 본질에 손쉽게 가까이 가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지요. 21세기 전반부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었던 테러와의 전쟁, 세계금융위기 같은 어려운 문제보다 훨씬 위협적이고 실제로 사람이 죽고 있고, 이 문제의 완화를 위해 현장에서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에서 이 문제는 전쟁에 비견될만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와 정치, 경제적문제로 갈등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증오한다고 해서 그 증오의 감정을 맞받아쳐주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대상과의 전쟁이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굳이 전쟁의 개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싶다면 우린 과거의 전쟁사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겁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많은 전쟁에서 발견되는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전쟁 개시 시점에 유용했던 방식이 전쟁 종료까지 계속 유용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임진왜란을 생각해 봅시다. 전쟁 초반 토요토미 군의 진격은 매서웠습니다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전선이 고착되고 축소되었고 마침내 고립되어 궤멸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토요토미 군의 전략이나 전술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았죠. 하지만 조선군은 점점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기 시작했고 양적인 측면에서는 명나라군의 증원도 이어졌습니다. 전장의 상황은 달라졌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점점 예전과 같은 승리를 거두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외에도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등 전쟁 초반에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강자들이 바로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졌고 결과적으로 패배자가 된 사례를 흔하게 찾을 수 있지요.

한국의 방역 상황도 한 번 봅시다. 한국의 방역 대책은 2020년 내내 대체로 잘 작동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월이 되면서 점차 기존의 대책들이 먹혀들지 않게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뭘까요? 몇몇 사람들의 일탈을 탓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사회 구성원 모든 사람이 전부 동의할 것을 가정하고 이루어지는 대책에 애초에 제대로 된 것이기는 할까요? 한국엔 국적자만 50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외국인도 250만명이나 되지요. 거주지도 소득도 살아온 이력도 신념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부의 방침에 120% 퍼센트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10만명 정도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10만명이라고 해봤자 전체 인구의 0.2%도 안 됩니다.

이들의 잘잘못을 떠나서 최소한 이 정도의 사람들은 정부의 방침에서 엇나갈 것이라는 가정 하에 모든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는게 당연할겁니다. 질병관리청이나 보건복지부, 혹은 청와대나 기타 정부 기관들도 방역 대책에서 이 정도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만들고 있지는 않겠죠. 최소한 이 정도의 일탈은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란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나온 뉴스 하나는 현재의 방역 대책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정부 방역 조치 명령을 따르기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사람들이 부도덕해져서 그렇다고 치부하고 이 사람들을 처벌하고 교정하는 단순한 결론으로 몰아가는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벌써 온 나라가 이렇게 살아온지 1년이 됐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메르스 사태 때처럼 다 같이 잠깐 참으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 아니라 기약없는 통제가 되어간다는 것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일수록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겠죠. 상황은 너무 장기화 되었고 이런 억눌린 생활이 잠깐의 인내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삶의 형태가 된다는 상황을 부정하고 싶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그 사람들만 책망하는건 그저 그 사람들의 나약함을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이나 학교나 군대라면 누군가의 나약함은 비난거리가 될 수 있고 개선을 요청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적어도 1987년부터는 나약한 사람을 비난하고 모욕하기보다는 다른 모든 개인이나 단체가 그들을 책망하더라도 이들과 함께하고 최후의 방어선이 되어주는 역할을 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 나라는 나약한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나 권리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요.


이 전쟁에서 상황은 변했고 기존의 방식을 강요하는건 시간이 갈수록 설득과 공감이 아닌 강압과 억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신규 감염자 숫자는 방역 선진국 운운하기엔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서는 우리가 실패 상태에 있고 기존의 방법들은 모조리 재점검 해야한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는 것 말고는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저 계속 고집하고 누군가를 탓하는 것으로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는 법이죠. 백신 이외의 다른 방역 대책으로 시간을 벌어보겠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금은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생각해보는 것 말고는 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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